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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디지털, 아날로그

브렌쏭 2016. 7. 30. 15:27

흔히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과 아날로그로 사물을 분류하는걸 좋아한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디지털에 집착하고 아날로그에 집착하고, 역시 덕질에는 왕도가 없다는 사실만을 다시 깨닫게 되는데, 재미있는 점은 아날로그나 디지털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흔히들 손목에 차고 다니지만 보진 않는 예쁜 시계는, 어지간한 고가품이 아니라면 죄다 건전지를 이용한 쿼츠시계일 것이다. 흔히 말하는 원반형식의 아날로그 시계도, 간단하게 숫자를 그대로 보여주는 디지털 시계도, 뜯어보면 죄다 디지털이란 충격적 사실이다. 반대로, 순수하게 태엽과 톱니바퀴만을 이용해 구현한 숫자표기의 디지털 시계 또한 인터넷 검색으로 간단히 찾을 수 있다. 도데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는 뭘까? 어떻게 규정하고 분류해야 하는 걸까? 


원래 디지털은 어떤 뜻이냐, 한다면 자료를 특정한 최소 단위를 가지는 이산적인 수치를 사용하여 나타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대로 아날로그는 자료를 연속적인 실수로써 나타낸다. 아뿔사, 젠장. 위에서 득의 양양하게 “디지털시계도 아날로그시계도 결국엔 다 디지털! 엣헴” 하고 말했지만, 저 정의를 이용한다면 모든게 깔끔하게 정리된다. 아직 이해가 가지 않았다면 설명해주마. 

먼저, 디지털시계를 디지털이라 하는건 디지털시계는 시간을 토막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뭔말이냐고? 잘 생각해봐, 디지털 시계는 아무리 정밀해도 1/100초를 보여주지 않는 시계로는 지금이 1초 50 인지, 1초 70인지 알 수가 없다. 1/100초를 알려주면 되지 않냐고? 그럼 1/1000초를 알 수 없을 뿐이다. 애통하고도 슬픈 태생적 한계 아닌가. 반대로 아날로그시계는 모든 시간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이렇게 생각하니 상당히 무서운 기계로군, 시계라는 건. 무한한 찰나의 찰나의 찰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우리에게 보여준다. 심오한 사상을 지니고 있다. 그 순간순간의 흐름을 우리가 다 자각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1초가 무한 같은 느낌을 받겠지.


다시 요즘 어딜가나 우대받는 디지털로 넘어오면, 상당히 흥미롭다. 디지털방식의 활용은 저 정의에 의하면 별로 최근의 것도 아니다. 봉화를 통해 연락을 취하는 것도, 모스부호도 다 디지털이라고 볼 수 있는거니까. 하지만 역시 최근에 가장 각광받는 디지털 신호는 5가지도, 3가지도 아닌 극단적으로 적은 가짓수인 2가지, 0과 1을 사용하는 신호이다. 더 이상 줄어들 수 없을  때까지 하드코어하게 줄여버린 디지털 신호로 우린 매일매일을 살아간다. 단 2가지 신호를 벗삼아 살아가는 요즘 우리들의 세상은 그 디지털 신호와 상당히 닮아있다. 모든 것은 0(제로)이거나 1(전체)이다. 흑이거나 백이다. 틀렸거나 맞다. 손해이거나 이득이다. 적군이거나 아군이다. 지나치게 이원론적인 사고를 가지고 무서울 정도로 편가르기에 몰두한다. 그렇게 몰두하는 이유는 심플하다. “편리하니까.” 승리자와 패배자를 가르고 이득과 손해를 구분하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편리하다. 덜 고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피해자가 나올 것임은 우스울 정도로 자명하지만, 내 알 바 아니잖아? 이 지구의 모든 인간들은 자각없는 아이와 자아없는 인간을 제외한다면 눈을 감고 자위하는 악인들 뿐이다. 선량한 사람 따윈 없다고 봐도 좋다.


아니, 비약이 지나쳤나.


아무리 그래도 한둘쯤은 있겠지 좋은사람. 그래도 우리가 모든것을 연속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건 어느정도 인정해야할 사실인듯하다. 늘 우리가 얻는것들은 단편적인 정보들이고, 그것들을 취합해서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는 거니까. 결과가 연속적이라 한들, 바탕은 뚝뚝 끊어진 파편쪼가리들만이 나뒹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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